출산후 2주동안 산후조리원에서 꿈결같은 2주를 보냈다. 이후 집에 돌아와 아기를 거실 한복판에 뉘여놓았을 때 나는 정말 무서웠다. 이제 아이의 생사는 온전히 내손에 달려있었다. 이 시기에 겪는 감정의 소용돌이를 산후우울증이라 말한다. 의학적으로는 호르몬의 변화 때문이라 한다. 이 시기에 나는 '속았다'는 느낌 때문에 굉장히 혼란스러웠다.
모성에 대한 환상은 고등학교 때부터 차곡차곡 쌓였다. 고등학교 2학년 때 출산에 관한 우리들의 질문에 불어선생님은 이렇게 답하셨다.
"우주를 여행한 느낌이었다. 내가 살면서 느낀 가장 짜릿한 경험이었다."
출산은 고통스럽다는데 선생님은 그것이 마치 경이로운 짜릿함이란듯이 표현했다. 이때부터 장기간에 걸쳐 선의의 거짓말에 노출된 거 같다.
출산전에 육아카페에 가입하여 다른 엄마들의 출산기를 모두 읽었다. 죽을듯이 아팠지만 아이의 얼굴을 보는 순간, 고통의 기억은 눈녹듯이 사라진다고들 증언했다. 그러나 산통은 내가 상상한 것 이상의 고통이었다. 산전 운동을 다닐 때 강사는 모유수유와 자연분만에 대해 열열히 찬양했다. 모성애를 가진 여자라면 당연히 해야할 임무 같았다. 그러나 모유수유의 과정은 유혈이 낭자한 사투였다. 수유 도중 찌르르한 고통에 흠칫놀라 보니 내 아기의 입가에 피가 흐르고 있었다. 고통으로 얼룩진 모유수유는 4개월만에 끝나고 분유를 먹이면서부터 평화가 찾아왔다.
모성은 아이를 낳는다고 뚝딱 생기는 도깨비방망이 같은 것이 아니었다. 모성은 '희생'의 속성을 가진 사랑이다. 아이를 낳고 기르면서 성숙한 인간이 되어가는 과정이란 걸 나중에 알게 되었다. 그런데 나는 모성과 자기애 사이에서 줄다리기하는 나약한 인간일 뿐이었다. 내몸이 아프고 자유를 빼앗긴 상태에서 그저 보람차고 행복하기만 할까.
아이를 기른다는 것은 세상에 나 자신보다 더 소중한 사람이 생기는 것이다. 그런데 목숨보다 소중한게 생긴다는 건 내가 더이상 쿨한 존재가 될 수 없다는 걸 의미한다. 내가 이 세상에 낳아놓은 그 생명을 책임지기 위해 나는 치사해지기도 하고 구질구질해 지기도 한다.
출처/다음영화
봉준호감독의 '마더'를 처음봤을 때 나는 엄마가 아니었다. 그래서 엄마를 소재로한 재미있는 스릴러 영화 정도로 보고 넘어갔다. 그당시에 정말 이해가 안갔던 장면이 하나있었다. 들판에 홀로서서 미친 사람처럼 춤을 추는 김혜자의 모습이었다. 딸아이가 15살이 된 지금 나는 그 장면이 자꾸 생각난다. 엄마로 산다는 건 그런 거다. 아무도 없는 들판에서 미친 춤을 추는 것. 아픈 아들을 혼자 키우는 영화속 엄마의 모든 행동은 혼자 추는 춤 같았다.
내 자식의 안위를 위해 나는 무슨 짓까지 할 수 있을까. 나는 남편의 울타리안에서 보호받으며 사느라 '무슨짓'까지 하지 않아도 되었다. 그랬기에 적당히 이기적이고 적당히 치사하게만 살면 되었다. 영화속 김혜자는 발달장애 아들을 키우는 힘든 삶을 포기하려고 아들이 어릴 때 자살시도를 생각했다. 내가 세상에 내놓았어도 일단 태어난 후엔 자식도 타인이거늘, 어미는 자식에게 그렇게 이성적일수 없었다. 남한테 천대받고 살게 두느니 내가 그 목숨을 가져간다. 비틀린 모성이다. 그런 형태의 자살을 동반자살이 아니고 자식살해라고 불러야 하는 이유다.
가장 위대하다고 칭송받는 사랑의 형태인 모성은 폭력의 형태로까지 변질될 수 있는 것이다. 내 자식의 안위를 위해 남의 자식을 죽이는 극악한 형태까지. 영화속 김혜자는 아들의 '과실치사'장면을 목격한 남자를 죽이면서 이렇게 말한다."내자식 발톱의 때만도 못한 놈이…" 징글징글한 모성이다.
모성은 내 안의 인간성의 일부일 뿐이다. 모든 조건이 큰 문제없이 갖추어져도 힘든 것이 자식을 기른다는 업이다. 낳기만 해도 저절로 잘 자라는 사피엔스는 없다. 우리 종의 자녀들은 무한의 사랑과 희생을 먹고 자란다. 요즘 젊은이들이 결혼도 안 하고 출산은 더욱 하지 않는걸 보면 그들은 내가 엄마가 되고난 후 깨달은 걸 벌써 알고 있나보다.
팩트풀니스란 책속에서는 저출산과 여성의 교육수준이 정비례함을 보여주는 데이터가 있었다. 여성의 교육수준 향상이 핵심적인 원인이라면 저출산문제 해결은 아주 힘든 과제가 될 것이다. 남녀를 불문하고 사람들은 점점 타자에게 휘둘리지 않고 오롯이 자신을 위해 살고싶어 한다. 설령 그 타자가 자식이어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