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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녀갈등 - 잊을 수 없는 추석엄마와 딸 2020. 9. 29. 14:02반응형
엄마와 사이 안 좋은 딸
*엄마에 대해 쓰면서 내 안의 상처받은 아이가 성숙하길 바랍니다. 그리고 엄마와 사이 안좋은 딸들과 공감하고 싶어서 씁니다.
어렸을 때는 엄마를 무서워하면서도 엄마에게 잘보이려고 노력했던 것 같다. 초등학교 3학년쯤부터는 일하러간 엄마가 돌아왔을 때 화내지 않도록 설겆이와 빨래를 해놓곤 했다. 그런데 중학교 2학년 추석 때 사건이후로는 엄마를 그냥 경멸했던 것 같다.
엄마는 자라는 동안 귀에 못이 박히도록 아빠를 욕했다. 아빠의 무능과 무시에 지친 엄마의 감정은 고스란히 내 귀에 쓰레기가 되어 쏟아졌다. 엄마는 아빠만 욕한게 아니라 시어머니와 아빠의 형제들과 그 부인들 모두를 욕했다. 아빠는 7남매의 장남이었는데 부모형제에 대한 의무감이 강했던 사람이었다. 어이없게도 처자식에 대한 의무감은 약했었다. 그걸 알고 있었기에 나는 엄마의 신세한탄을 묵묵히 들어주었고 가끔은 맞장구를 쳐주었다. 계속 듣다보니 엄마는 결혼생활의 피해자였고 아빠와 시집식구들은 몰상식한 사람들이었다.
중2쯤 되니까 말발도 좋아지고 아는 것도 조금씩 생기고 어른이 우습게 보이기 시작했다. 나는 엄마의 처지에 깊게 감정이입한 나머지 아빠도 싫었고 친척들은 더더욱 싫었다. 그들이 떼로 우리집에 몰려오는 명절은 아주 고역이었다.
시건방이 하늘을 찌르던 중2 추석날, 나는 밥상을 받고 모여앉은 친척들한테 선언했다.
"이제 명절에 우리집에 오지 마시오. 댁들 눈엔 우리집이 제사를 지낼 처지가 못 되는게 안보이나? 가난한 형집에 기어들어와서 제사지낼 생각말고 이제 딴데서 제사 지내시오"대충 이런 내용을 말했다. 맘속에서는 엄마를 대변한다는 뿌듯함까지 느끼며 말했는데 놀랍게도 엄마는 내 뺨을 후려 갈겼다. 지금도 그날의 충격이 생생하게 기억난다. 지금 생각해보니 충격이라기보단 '모멸감'이었다. 많은 사람들 앞에서 엄마에게 맞은 모멸감.
친척들은 밥을 먹는둥 마는둥하며 하나둘씩 돌아갔다. 엄마는 밥상을 치우면서 내게 변명조차 하지 않았다. 지금까지도 엄마가 왜 내 빰을 때렸는지 알지 못한다. 내가 엄마의 어두운 속마음을 친척들 앞에서 들춰내서일까. 자식을 버릇없이 키웠다고 손가락질 받을까봐? 나를 그렇게까지 감정이입하게 만든 건 엄마의 하소연이었는데 돌아온 건 굴욕적인 손찌검이라니. 엄마는 옛날 사람이어서 그런걸까. 그렇게 미워하면서도 시집식구들한테 욕먹는건 싫고 애꿎은 자식들한테만 화풀이 했다.
이때부터 나는 엄마를 두려워하는게 아니라 경멸하기 시작했다. 그게 엄마의 마지막 손찌검이었다. 그 이후론 엄마가 아무리 신세한탄을 해도 나는 뾰족한 송곳이 돼서 찔러댔다.
"왜 나한테 신세한탄이야. 지금이라도 이혼하던가"
내 머리가 굵어지자 엄마는 때리지는 못하고 욕을 하기 시작했다. 엄마한테 많이 들은 욕은 '썩을 년, 염병하고 있네'였다. 나는 이런 엄마를 가진게 너무 싫었다.
지나고 보니 엄마는 시집식구가 싫은게 아니라 그들에게 인정받고 사랑받고 싶은 거였다. 아빠 형제들과 인연이 흐려지고 왕래가 끊기자 엄마는 다음 목표로 넘어갔다. 오빠의 와이프, 올케였다.
이번주에 엄마집에 간다. 엄마와 나는 서로에게 상처가 되었던 옛날 얘기는 꺼내지 않는다. 엄마는 여전히 주위 사람들을 욕하면서 지내신다. 엄마에게서 부정적인 에너지를 두 시간 받아주고 도망치듯 내 집으로 돌아온다. 왜 일찍 가냐고 서운해 하시지만 수십년 들어왔던 엄마의 신세한탄이 더이상 내게 영향을 끼치지 않도록 조심한다. 엄마는 언제쯤 스스로를 사랑하면서 사시게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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