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기장에나 적어야 될 개인적인 내용을 블로그에 올리니까 좀 부끄럽기도 하지만 엄마와 사이 안좋은 딸들과 공감하고 싶어서 씁니다.
사는 게 너무 힘들었어
얼마전에 화성 행궁동 나들이를 갔다가 가정집에 '절' 표시가 된 곳을 지나게 되었어요. 절표시가 있지만 무속신앙인 영업점인 듯했어요. 안에서 울부짖으며 중얼거리는 여인의 목소리가 길가로 흘러나왔지요. 목소리로 봤을 때 복을 기원하는 건 아니었어요. 아마도 무슨 한을 풀어주는 의식 이었나봐요. 울부짖으며 한맺힌 이야기를 풀어내는 것. 토템의식이란 것은 전세계적으로 비슷한가 봅니다. 대학교 영문강독시간에 읽었던 '세러모니'라는 작품이 있어요. 백인과 혼혈인 미국 원주민이 주인공인데, 전쟁에 나갔던 트라우마를 겪으며 술에 절어살던 주인공이 원주민 주술사의 세러모니(의식)를 통해 치유를 해나간다는 이야긴데요. 세러모니의 첫단계가 자신의 이야기를 말하는 거였어요. 이야기의 힘은 대단해서 자신의 고통을 객관적으로 바라보게 만들어 준다고 해요. 말을하는 과정에서 카타르시스를 느끼는 점도 중요하고요. 제가 엄마에 관한 글을 쓰는 이유죠.
결혼전에 한참 직장생활을 하던 서른 초반쯤, 어느날 엄마가 무슨 얘기를 하던중에 갑자기 옛날 얘기를 꺼냈어요. 제가 어렸을 때 너무 우는바람에 많이 맞았다고. 힘들게 일하고 집에 오면 삼남매가 싸우고 항상 제가 울고 있었대요. 저는 오빠 하나와 남동생 하나가 있어요. 엄마는 사는게 너무 힘들었대요. 지친몸을 이끌고 집에왔는데 제가 계속 울면 너무 화가 났대요. 어느 날은 제가 울음을 그치지 않아서 화가난 엄마가 좀 심하게 때렸데요. 일찍 잠든 제가 자면서도 흐느끼는 모습을 보고 미안한 생각이 들었다고 엄마가 그러더군요. 엄마딴엔 저에게 사과한다고 말을 꺼낸거죠. 그런데 저는 기분이 안 좋더라구요. 제가 엄마를 싫어하니까 마음이 꼬여있는거죠. '뭐야. 늙어서 털어 놓으면 쉽게 용서받을줄 알고? 말해서 엄마는 죄책감을 덜어내서 좋겠네. 나는 이제부터 엄마의 말이 계속 생각날텐데' 제가 딸을 낳고 키우면서 가끔씩 놀랄 때가 있었어요. 제게서 엄마의 그림자가 보였거든요. 제 딸도 7~8살 쯤에 꽤나 징징댔는데, 그때 제맘이 그렇더군요. '계속 챙겨주는데도 쟤는 왜 저렇게 징징거려서 날 힘들게 하나' 물론 저는 체벌하는 엄마는 아니에요. 그냥 화를 많이 냈죠. 엄마를 원망하면서 엄마를 닮는다는건 제게 저주 같았어요. 한편으로는 그런 생각이 들더군요. 나는 능력있고 헌신적인 남편의 울타리안에서 애 하나 키우는데도 그렇게 힘들다고 짜증냈구나. 그런데 엄마는 고된 노동을 하고 집에 돌아왔을 때 기다리는 것이라고는 배고프고 꾀죄죄한 철부지 삼남매였으니. 사는게 힘들었다는 엄마말이 이해 돼요. 엄마는 자식에게 사랑을 쏟는 엄마는 아니었지만 그래도 책임감은 있었어요. 그래서 엄마한테 감사하면서도 어릴적부터 쌓인 앙금이 잘 없어지지 않네요. 하늘의 뜻을 아는 나이가 다가오는데도 나는 아직 철이 덜든 모앙이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