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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먼 자들의 도시 - 주제 사라마구책 2020. 8. 28. 11:13반응형
눈먼 자들의 도시 눈먼 자들의 도시 + 로드 (코맥 매카시)
: 다른 소설, 같은 느낌
'인간이란 무엇인가? 우리는 왜 사는가?'
작가는 이런 질문을 던지고 평생 글로 답을 하는 사람들이다. 사라마구와 매카시는 오랜 성찰 끝에 다음과 같은 결론을 얻은 것 같다. 인간은 유기체라는 조건때문에 생존이 위태로운 상황이 되면 문명이나 도덕같이 거추장스러운 건 가뿐히 던져버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존엄을 버리지 않는 소수의 사람이 있어서 우리는 희망을 갖는다.
주제 사라마구의 '눈먼 자들의 도시'를 읽으면서 코맥 매카시의 '로드'가 생각났다. 묵시록적 세상을 생생하게 표현한 점이 같고, 인간에 대한 날카로운 통찰이 돋보인다는 점 때문일 것이다. 물론 두 책속의 사람들이 처한 비극은 그 무게가 다르지만 말이다.
원인을 알 수 없는 전염병
'눈먼 자들의 도시(Blindness)'에서는 사람들이 눈이 멀게 되는 병에 걸린다. 원인을 알 수 없으니 치료할 수도 없다. 공권력은 병자들을 수용소에 가두고 군인들이 그들을 감시한다. 주인공인 의사의 아내는 눈이 멀지 않았지만 남편을 따라 수용소에 함께 들어간다. 그녀는 타인에 대한 측은지심이 있고 강한 정신을 가졌다. 수용소안에서는 총으로 권력을 가진자들이 식량을 독점하고 여성들을 유린한다. 의사의 아내는 권력자에게 반항하여 지옥같은 수용소에서 탈출하게 된다. 그녀는 다른 약자들을 이끌고 집으로 돌아가는 고난길에 나선다.
눈먼자들에 둘러싸여 유일하게 볼수 있는 의사의 아내는 안도와 공포를 동시에 느겼을 것이다. 볼 수 있어서 최소한의 존엄을 유지할 수 있지만, 주위의 모두가 눈멀어 있으면 남과 다르다는 사실만으로 공격받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눈이 '멀다'라는 표현은 시력을 잃는다는 직접적인 뜻과 진실을 알려고하지 않는 무지를 은유한다. 과학적 사실을 부정하고 사이비 광신도적 행태로 전국민을 전염병의 위험에 빠트린 일부 개신교 집단과, 자신과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들을 패륜적인 말로 욕하면서 희희덕거리는 일베싸이트의 반지성주의도 눈먼자들의 광기라고 할 수 있겠다.
그런 세상이라도 살아가는 것이 더 낫다
'로드(The road)'는 대재앙 이후의 미국을 배경으로 한다. 인간성을 버리지 않은 사람들이 있을 거라는 희망을 갖고(그리고 식량을 찾아) 길을 가는 아버지와 아들의 이야기다. 지구에 재앙이 내려(아마도 인간에 의한 기후변화 때문일까) 소수의 인간을 제외한 대부분의 동식물이 사라졌다. 사람이 사람을 잡아먹는, 사람이길 포기한 자들이 날뛰는 세상이 되었다. 그런 자들에게 강간당하고 잡아먹히느니 죽는게 낫다고 생각한 아이의 엄마는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
그런 세상에서 태어난 아들을 가여워 하며 끝까지 지켜주려는 아버지의 사랑이 진한 감동을 준다. 자신이 살았던 아름다운 세상이 아닌 지옥같은 곳에 자식을 남겨야 하는 부모의 심정에 공감하게 된다. 그런 세상일 지라도 살아가는 것이 더 낫다고 아버지는 말한다.
내가 두 소설에서 가장 재미있게 읽은 부분이 먹을 걸 찾아 끝없이 헤메는 부분이었다. '눈먼 자들의 도시'에서는 의사의 아내가 사람들과 수용소에서 나온 후 먹을 걸 찾아 헤멘다. 그러다 한 상점의 지하창고에서 소세지를 찾아서 먹는데, 읽으면서 마치 내가 하루종일 굶다가 소세지를 먹은 것마냥 만족스러웠다. '로드'에서도 아버지와 아들이 어느 버려진 집 마당에 있는 지하벙커를 발견하고 그 안으로 들어가 마음껏 통조림을 먹는 장면이 나온다. 통조림은 평소라면 그다지 선호하지 않는 음식임에도 그들이 느꼈을 행복이 고스란히 전해졌다.
나는 왜 소설의 이 부분이 그렇게 좋았을까. 내게 두 소설이 하나로 연결되는 지점이 '먹을 걸 찾아 헤메는 끝없는 여정'이었다는 게 좀 어이없긴 하지만. 먹을 걸 찾아 여기저기 헤메고 다녔을 오랜 조상의 피가, 그 걸 찾았냈을 때의 희열을 내 DNA에 새겨 놓았을까.
나는 이언 매큐언의 소설 '속죄'에서도 비슷한 장면에 매료되었다. 주인공 남자가 군대에서 낙오된 후 프랑스 북부의 해안기지까지 걸어서 찾아가는 장면에 훅 빨려들어 읽었다. 끝없이 오랜 길을 걸어 굶어죽지 않을 만큼의 식량으로 배를 채우며 목적지에 도착하는 여정. 내 삶과는 별로 접점이 없는데 그래서 더욱 끌리는 걸까. 이런 지루한 과정을 그토록 생생하게 묘사하는 것을 보면 작가란 사람들은 재능을 타고나는 거 같다. 그들은 후천적인 훈련으로 그리 됐다고 매번 주장을 하지만.
두 소설은 동명의 영화로도 나왔고 평이 꽤 좋다. 그러니 책을 읽기 부담스러운 사람은 영화로 보면 되겠다. 책으로든 영화로든 두 작품은 꼭 접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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