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아은 작가는 2018년에 ‘엄마의 독서’로 등단했다. 본인의 주요 정체성인 엄마로 사는 삶에 한 생각과 고민을 글로 쓰는 작가이다.
전업주부는 집에서 노는 사람일까? 저자는 '당신이 집에서 논다는 거짓말'의 기원을 파해친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주부가 집에서 놀지 않는다는 사실을 안다. 모든 가정에 우렁이 각시가 있는 것도 아닌데 자고 일어나면 짠~ 하고 밥이 차려지겠나. 하교 후 혹은 퇴근 후 집에 오면 집안이 깔끔하게 정돈되어 있고 내가 어제 빨래통에 던진 옷이 깨끗이 세탁되어 빨랫줄에 걸려있다. 이 것 역시 투명인간이 한 것이 아니다. 엄마나 아내(혹은 전업주부아빠)가 한 노동이다.
그런데 이 모든 노동을 없는 것처럼 혹은 낮추어 보게 된 문화적 배경에 자본주의가 있다고 저자는 설명하고 있다. 자본가는 노동자에게 최소한의 임금만 주면서 일을 시키고 싶어한다. 그리고 노동자가 퇴근 후 고된 몸을 씻고 휴식하고 밥을 먹고 다음날 다시 건강한 몸으로 일터에 나오길 기대한다. 노동자가 집에서 재충전하기 위해 필요한 노동이 ’재생산’노동이다. OECD 선진국 중 여성의 경제활동참여도가 가장 낮은 우리나라에서는 주로 주부가 담당하는 일이다. 주부가 하는 일은 금전적 보상을 당연히 받아야 하는 일임에도 자본가는 이 노동을 지금까지 공짜로 취했던 것이다. 그 바람에 전업주부는 노는 사람이 되고 여성은 남편에게 경제적으로 의존하게 된 것이다.
저자가 강연중에 어떤 미혼여성과 대화한 내용이 나오는데 읽다가 무척 당황했다. 전문직에 종사하는 한 미혼여성이 전업주부를 ‘타인의 자비심에 기대는’사람이라고 표현한 것이다. 쉽게 말해 돈 버는 남편의 자비심에 기대 산다는 말이다. (이런 사람을 기생충이라고 하지 아마….) 너무 놀랐다. 같은 여성의 입에서 나온 표현이라 더욱 충격적이다. 결혼생활이 얼마나 자본주의적인데 고작 남의 자비심에 기대서 굴러간다고 생각하는지 그 태도의 순진함에 놀란 것이다.
결혼할 당시 남편의 연봉은 나의 1.5배였다. 내가 하던 일반사무업무는 사회에서 값을 덜 쳐주는 일이었기에 프로그래머인 남편이 계속 돈을 벌고 나는 아이 낳고 전업주부가 되어 가사와 돌봄을 맡았다. 내가 남편 연봉의 2배쯤 벌고 있었다면 전업주부의 길을 과연 그렇게 쉽게 택했을까? 이런 역할분담 과정을 계약서 쓰고 하는 부부는 없을 것이다. 잠깐의 토론과 암묵적인 동의로 이루어지는 과정이다.
한국의 남편들이 특별히 자비심이 넘쳐서 전업주부 아내와 산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결혼생활은 돈문제가 핵심적인데 남편들도 돈 버는 아내를 원할 것이다. 하지만 아내가 돈 벌면 그만큼의 재생산 노동은 본인 몫이다. 게다가 육아도 적극 동참해야 하니 삶이 힘들어 진다. 그렇기에 남편들은 전업주부 아내가 벌어오지 못하는 돈을 좀 더 쾌적한 삶을 누리는 기회비용이라고 여기리라 짐작한다.
물론 내경우를 보면 노동시장에서 살아남으려는 멘탈도 약했다. 가장이 될거란 마음의 준비를 평생 한적이 없으니 회사를 그렇게 쉽게 때려 치웠던 것이다. 그 댓가를 나는 지금 치르고 있다. 경력은 제로가 되고 나이는 많은 상태로 사회에 나가야 하는 것이다.
파트너의 자비심에 기대는 것은 우리가 성공적으로 자식을 키워내고 삶을 온전히 마무리하기 위한 전략의 하나라고 생각한다. 내가 새끼를 낳아 먹이활동을 못할 때 수컷이 가져다 주는 먹이에 기대는 것이다. 이런 방식은 동물의 생태에서는 무척 드물다고 한다. ‘라이프 오브 사만다’에서처럼 짝짓기만 하고 떠나 버리는 치타는 개체수가 점점 줄어든다지 않는가.
이렇게 파트너의 보살핌으로 아이를 어느정도 키워 놓고 나서 우리는 경단녀가 되어 다시 사회에 나온다. 이 삶을 ‘남의 자비심에 기댄’다고 비난하는 건 너무 가혹하다. 파김치가 되도록 회사에서 일해서 가족을 먹여 살린 가장을 그가 사냥기술이 떨어졌다고, 혹은 사냥하다가 몸이 다쳐 불구가 되었다고 버리는 파트너는 드물 것이다. 전쟁에서 다친 전우를 두고 가지 않는 것처럼 부부는 함께 가다가 넘어지는 사람을 나머지 한 사람이 둘러매고 가지 않는가. 넘어진 사람이 아내든 남편이든. 이런 것이 결혼생활의 작동기제임을 사람들이 대체로 알고 있다고 생각한다.
결혼생활의 모습은 여러가지 일 수 있다. 함께 돈 벌고 가사와 돌봄 노동도 함께하면서 각자 통장을 관리할 수도 있고, 가장과 전업주부로 역할을 분담해서 가장이 경제권을 휘두를 수도 있고. 파트너 사이에서 상호 동의하고 만족한다면 그 형태가 무엇이든 남이 비난할 것은 없다.
'당신이 집에서 논다는 거짓말은' 전업주부인 내가 제목을 보고 안 읽고는 못배길 책이었다. 저자는 다양한 고전을 읽고 소개하면서 가사노동과 돌봄노동이 폄하된 배경을 설명하고 주부라는 나의 정체성을 곰곰히 되새겨보게 해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