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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에 대하여 - 김혜진책 2020. 8. 27. 12:56반응형
"딸에 대하여는 요양보호사로 일하는 엄마와 그녀의 딸, 그리고 딸의 동성 연인에 관한 이야기다."
책의 뒷장에 나온 책 소개 글이다. 제목과 달리 코끝이 찡한 감동의 이야기가 아니다. 읽다보면 좀 우울해 지는 소설이다.
여성 동성연애에 대한 소설은 아니다. 동성애는 주인공 ‘나’가 이해할 수 없는 것들 중 하나일 뿐이다. 딸의 성격은 많이 부각되지 못한다. 딸의 애인은 좀 더 구체적이지만 강렬하지 않다. 주인공의 현실에 딸만큼 중요한 인물은 ‘젠’이라는 치매노인이다. 주인공이 요양시설에서 돌보는 사람이다.
나는 이 책을 ‘삶의 고단함‘에 대한 소설로 받아들였다. 화자인 ’나’는 결혼 전에는 학교에서 아이들을 가르쳤고, 딸을 낳고난 후에는 교습소에서 일했고, 유치원 통학버스를 몰고 보험 세일즈를 했고 구내식당에서 음식을 만들었다고 한다. 딸아이를 다른 사람 손에 맡기기 싫어서 교사를 그만둔 것. 화자가 노년에 힘들게 노동을 해서 살아가는 데는 이 ‘경로이탈’이 치명적이었을 거다. 대략 60대로 추정되는 주인공은 남편이 일찍 죽었기 때문에 최후의 사회안전망이 없어진 상태다. 그래서 더욱 딸의 연애를 이해 못하고 불안해하는 지도 모른다.
이해할 수 없는 세상이지만 묵묵히 겪어 온 주인공과 달리 딸은 세상에 반기를 들고 목소리를 높인다. 주인공은 딸이 힘들게 살게 될까 두려워한다.
"나는 내 딸이 이렇게 차별받는 게 속이 상해요.
공부도 많이 하고 아는 것도 많은 그 애가 일터에서 쫒겨나고
돈 앞에서 쩔쩔매다가 가난 속에 처박히고 늙어서까지
나처럼 이런 고된 육체노동 속에 내던져질까 봐 두려워요.
그건 내 딸이 여자를 좋아하는 것과는 아무 상관이 없는 일이잖아요.
난 이 애들을 이해해 달라고 사정하는 게 아니에요.
다만 이 애들이 잘할 수 있는 일을 하도록 내버려 두고
그만한 대우를 해주는 것, 내가 바라는 건 그게 전부에요."
주인공이 요양시설에서 돌보는 ‘젠’이라는 여자는 젊은 시절 타인을 위해 봉사하는 삶을 살았다. 노년에 치매에 걸리고 가족이 없이 요양시설에서 지낸다.
"어쩌자고 이 여자는 이렇게 오래 살아 있는 걸까.
이런 순간 삶이라는 게 얼마나 혹독한지 비로소 알 것 같다.
하나의 산을 넘으면 또 하나의 산이 나타나고 또 다음 산을 넘고,
그럼에도 삶은 결코 너그러워지는 법이 없다.
관용이나 아량을 기대할 수 없는 상대,
그러니까 결국은 지게 될 싸움, 져야만 끝나는 싸움."
젠이 더 열악한 시설로 옮겨지자 주인공은 집으로 젠을 데려온다. 딸의 애인과 주인공이 주로 젠을 돌본다. 어느 평화로운 날에 젠은 세상을 떠난다. 주인공은 이런 과정 속에서 딸의 문제를 ‘끊임없이 싸우고 견뎌야 하는 일상’으로 받아들이게 된다. 이 소설 속의 삶은 견뎌내야 하는 자연재해 같은 것이다. 막무가내로 닥쳐오는 것들은 얼마나 무서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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