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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추천] 일의 기쁨과 슬픔 - 장류진책 2022. 1. 26. 22:11반응형
일의 기쁨과 슬픔, 장류진
- 사시는 동안 적게 일하고 많이 버십시오
오랜만에 책을 읽었다. 사회생활을 하는 20~30대 젊은이들이 주로 등장하는 8개의 단편이 묶인 소설책이다. 제목이 너무 평범해서 의아했는데 알랭드보통의 에세이 제목에서 영감을 받아서 쓴 단편의 제목이었다.
내가 사회생활을 하던 시절에는 소설들이 사랑, 인간성, 정의, 꿈 같은 주제를 많이 담았었는데 요즘 소설들은 그런 거대담론이 부담스러워 보일지경으로 생활밀착형(?)이랄까, 담담하달까. 그래서 부담없이 술술 잘 읽히고 재미있다.
젊었을 때 나는 시대와 불화해야 하고, 시스템에 저항해야될것 같은 느낌으로 살았는데, 이 소설속에 등장하는 젊은이들은 자본주의 시스템을 잘 이해하고 있으며 똑똑하고 적응력이 좋다는 느낌을 받았다. 소설속 젊은이들도 시스템에 문제가 있음을 알지만 가장 에너지를 적게 소모하는 방식으로 적응하려고 애쓰고 또 꽤나 잘 적응한다.
이 책속에는 요즘의 젊은 여성들이 아이를 낳는 것에 대해 어떤 느낌을 가지는지 엿볼수 있는 단편이 있었다. 제목은 '도움의 손길'
우리 부부는 아이를 가지지 않기로 했다. 나에게 아이는 마치 그랜드 피아노 같은 것이었다. 평생 들어본 적 없는 고귀한 소리가 날 것이다. 그 소리를 한번 들어보면 특유의 아름다움에 매혹될 것이다. 너무 매혹된 나머지 그 소리를 알기 이전의 내가 가엾다는 착각까지 하게 될지 모른다. 당연히, 그만한 가치가 있을 것이다. 하지만 책임감 있는 어른, 합리적인 인간이라면 그걸 놓을 충분한 공간이 주어져 있는지를 고민해야 할 것이다. 집안에 거대한 그랜드 피아노를 들이기 전에 그것을 놓을 각이 나오는지를 먼저 판단해야 할 것이다. 아무리 부족해도 어떻게든 욱여넣고 살면 살아진다는 것도 알고 있다. 물론 살 수는 있을 것이다. 집이 아닌 피아노 보관소 같은 느낌으로 살면 될 것이다. 그랜드 피아노가 거실 대부분을 차지하게 될테고 패브릭 소파와 소파스툴, 원목 거실장과 몬스테라 화분은 둘 엄두도 못 낼 것이다. 거실을 통해 부엌으로 가려면 한가운데로 가로 지르지 못하고 발뒤꿈치를 들고 피아노의 뒷면과 벽 사이로 겨우 지나가거나, 기어서 피아노 밑을 통과해야 할 것이다. 우리 부부는 그렇게 살고 싶지 않았다. 여태까지 단 한번도 충분하다거나 여유롭다는 기분으로 살아본 적 없는 삶이었다. 삼십대 중반, 이제서야 비로소 누리게 된 것들을 남은 인생에서도 계속 안정적으로 누리며 살고 싶었다. 이십평대 아파트에는 그랜드 피아노를 들이지 않는다. 그것이 현명한 우리 부부가 할 수 있는 가장 합리적인 선택이었다.
'도움의 손길'중에서젊은이들한테 결혼하라고 보채지 말고 아이낳으라고 압박하지 말자. 지구상에서 개체수가 대책없이 많아져 버린 사피엔스의 현명한 선택일수도 있으니까. 지금의 젊은이들은 자신들에게 가장 합리적인 선택을 하고 있는 중이니까.
이 책을 읽으면서 든 생각을 잘 함축하는 문장이 있었다. '사시는 동안 적게 일하고 많이 버십시오.'
모두에게 해주고싶은 말이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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