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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짜 멋진 할머니가 되어버렸지 뭐야책 2020. 9. 23. 14:10반응형
진짜 멋진 할머니가 되어버렸지 뭐야
노년의 시간을 가장 찬란하게 보내고 있는 부산 할머니의 여행기이다.
"내 나이가 몇이라 해도, 노년이 되었다 해도, 인생이 끝났다고 생각하지 말자. 아직 죽지 않았다면 어쨌든 삶은 끝난 게 아니다. 아직은 더 섧고, 더 외롭고, 더 고독하고, 더 인내하고, 더 아픈 시간이 지속될 것이다. 그런 것을 부여안고 내가 할 수 있는 무언가를 끝없이 해나가야 한다. 그래서 나는 지팡이 대신 캐리어를 끈다. 그리고 여행한다."
1부에서는 유럽 여기저기를 여행하는 할머니의 재미난 에피소드가 주로 나온다. 앞부분에는 부산 할머니라는 정도만 나오기에 유복하게 살아온 할머니의 고상한 취미인가? 라고 생각하면서 읽었다. 그런데 2부, 3부를 통해 할머니의 지난 삶이 드러나면서 글의 깊이가 더해진다.
"나이들어 여행한다는 것은 어쩌면 내가 몰랐던 세상을 보러 가는 것이 아니라 역으로, 내가 살아온 세상과 내가 지나온 시간을 보러 가는 것인지도 모른다."
2부에서는 나이먹는 것이 어떤 느낌인지 묻어나는 잔잔한 글들이 눈에 띈다. 초등학생 손주가 있으니 완벽한 할머니지만 아직 할머니보단 아줌마라는 정체성이 익숙한 분이다. 주변사람들이 무심결에 뱉는 할머니라는 호칭에 서운해 하는 모습이 드러나기도 한다.
"설령 누군가가 나이든 그대를 모른 척하거나 적대시하더라도 슬퍼하거나 노여워하지 마라. 그것은 그가 그대를 미워하는 것이 아니라 늙음, 그 육신의 추레함이 싫을 뿐이니까 "
3부에서는 작가의 가족 이야기가 많이 나온다. 할머니의 남편, 시어머니, 자식들이 이야기에 등장한다. 그중에 가장 인상깊었던 글은 할머니가 젊었을적 워킹맘으로 살았던 때의 이야기다. 그날은 아마도 할머니의 인생에서 가장 고단했던 하루였을 것이다. 힘든 일과와 아이에게 부족했다는 죄책감이 한데 뭉친 하루. 공감이 많이 가는 내용이었다.
책의 뒷부분에는 영국해협의 작은 섬인 건지섬과 사크섬의 이야기가 나온다. 할머니는 다음 생에 그곳에서 태어나도 좋을 것 같다고 표현했다. 모든 사람이 모두의 일과를 알고 있는 작은 마을. 그런 마을에서 사는 모습을 상상하는 글은 어딘가 비현실적이면서도 행복해 보인다. 할머니는 행간에서 메세지를 보낸다. 현재를 살라고.
"좀더 악착스럽게 일하고 벌어서, 자식들 잘 먹이고 잘 공부시키고, 좀더 큰 집에서 남들 다 하는 것들을 하고 그런 만큼만 살자, 하며 열심히 산 시간이 갑자기 부질없어 진다. 그리하여 남은 것은 짧아진 내 생의 시간뿐인걸 "
*깜짝 정보:
경상도의 대중목욕탕에는 '등밀이 기계'가 있다. 이게 뭔지 너무 궁금해서 찾아봤다.등을 골고루 밀기 위해서는 위아래로 움직이며 아이돌 댄스를 추어야할 것 같다.
이런 기계가 있다는 것이 놀랍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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