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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천명의 나이에 아이유에 빠지다일상 2020. 9. 22. 15:38반응형
지천명의 나이에 아이유에 빠지다.
내 얘긴 아니다. 남편 얘기다. 사고싶은 것도 없고 탐식도 예전 같지 않고 그저 끝없이 쉬고싶다는 말만 했었다. 한마디로 뭘해도 재미가 없다는 거였다. 갱년기이거나 오춘기이거나 뭐 그럴 것이었다. 군제대 후 한번도 돈 안벌면서 논 적이 없는 남편이라 쉬고싶다는 말이 너무도 이해가 갔다.
월급쟁이의 삶이 끝나면 잠시 갭이어를 갖자고 말했었다. 그러나 우리나라처럼 경쟁이 심한 나라에서 트랙에서 이탈하려는 결심에는 많은 것을 걸어야 한다. 내게 돈벌이가 있었다면 남편에게 쉬면서 전업주부를 하라고 했겠지만 그것도 불가능하다. 그러니 그저 힘 내라고 할 밖에.
남편은 심드렁하게 축구를 보거나 전자제품 언박싱을 보곤했는데, 그의 유튜브 족적에 아이유의 영상이 있는 거였다. 예전부터 좋아했고 음반을 산적도 있어서 알고 있었지만, 금요일 저녁에 이렇게 말할 때는 느낌이 좀 달랐다. 설렘이 전해졌달까.
"나 스케치북에 아이유 나오는거 봐도 돼?"
애도 아니면서 허락을 구하는 거다. 평소에 내가 선호하는 음악이 아니니까 양해를 구하는 거였을 테지. 그런데 긴 시간동안 아이유 공연을 보고 있는 남편을 보니 심술이 뻗쳤다. 내가 아이유 음악을 선호하지 않아도 그녀가 재능있는 가수이고 아주 예쁜 목소리를 가진 것에 언제나 동의 했는데.
예전에 집에서 헤드폰으로 데이비드 보위의 음악을 듣고 있으면 남편이 다가와서
'보위의 노래 중 제일 좋은 곡을 들려 달라'해서 Life on Mars를 들려줬었다. 그때 남편이 그랬다. 뭐 이런 영감탱이 노래를 좋아하냐고 이상하다고. 그러면서 한발 더 나가 선을 넘었다.
"너는 데이비드 보위의 노래를 좋아하는 게 아냐. 그 외모를 좋아하는 거지"
잘생긴 가수들이 흔히 듣는 말이기에 그냥 속으로 '뭐 그래 보일 수도 있겠지.'라고 지나갔었다. 드디어 시간이 온 것이다. 나의 왕자님 음악과 나의 팬심을 폄하한 죗값(?)을 치를 시간이 온 것이다.
"아니, 이런 이십대 감성 노래를 중년 남자가 왜 이렇게 좋아해?. 내가 보기에 당신은 아이유의 노래를 좋아하는 게 아냐. 그녀를 자신의 이상향 속의 여자친구로 좋아하는 거지"
아무말이 없는 남편이 속으로 무슨 느낌이 들었을지 모르겠다. 어찌됐든 몇년전 자신의 별로 돌아간 나의 아이돌에게 의리를 지켰으니 이제 되었다.
그렇게 말하고나니 조금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나이에 맞는 음악취향이 따로 있겠나. 좋으면 듣는거지. 남편이 보위를 안 좋아해도 독일에서 발매된 3CD 음반을 구매대행으로 사줬었다. 당신, 츤데레를 해보고 싶었던 거야?
이제 마음껏 아이유 음악을 들으시오. 음악이 주는 위로는 가족이 줄수 없는 특별함이 있는 걸 나도 아니까. 다만, 이어폰은 껴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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