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에 딸아이 배웅하느라 현관문을 열었는데 택배가 와 있었다. 시킨게 없어서 의문이었는데 수신인이 딸이름으로 돼 있었다. 주로 택배는 나와 남편 이름으로 오기때문에 생소했다.
택배는 한 신문사에서 보낸 것이었다. 딸아이 학원에서 공모전에 냈던 작품이 당선되어 상품과 상장이 배달되었던 것. 공모전은 가정의달 맞이 편지쓰기였다. 오랜만에 장문의 딸 편지를 읽으니 새삼 기분이 좋았다. 그런데 편지의 내용때문에 걱정과 우울이 동시에 찾아왔다.
학기초에 서먹한 교우관계에서 느끼는 부담과 공부스트레스 때문에 우울했던 심정을 가감없이 써 놓았다. 다행이 기말고사를 앞둔 지금은 친한 친구들도 사귀어서 재미있게 지내고 있는 반면 시험스트레스는 점점 더 심해지는 모양이다.
중학교 1학년을 자유학기제로 시험없이 지내다가 갑자기 과목별로 수행평가를 치르고 지필평가를 준비하는 과정이 힘에 부쳤나보다. 우울한 정서가 편지에 드러나 있었는데, 시험이라는 부담없이 놀았던 옛날을 그리워하면서도 미래를 걱정하는 불안감이 보였다.
가끔 딸아이가 친구 얘기를 했었다.
"엄마. 걔는 장래희망이 변호사래" "오, 그래? 공부 열심히 하겠네" "엄마, 난 뭘 하게 될까?" "뭐 하고 싶은거 없어?" "딱히 없는데...." "너 글 재미있게 쓰니까 컨덴츠 크리에이터 어때?" "글 쓰는 거는 별로 하고싶지 않아" "꼭 글이 아니어도 괜찮지. 유튜브 영상 찍는 거도 좋고" "......"
우리의 대화는 이렇게 마무리 되곤 했다. 중2는 또래압력이 가장 큰 나이인것 같다. 주변 친구들이 사뭇 구체적인 목표로 공부하는 모습을 보더니 '나는 뭘 해야하지?' 라는 질문에 맞딱드린 것 같다.
중학교 1학년을 자유롭게 진로탐색 하는 시기로 정한 자유학기제는 성공적인 제도가 아닌 것 같다. 시험스트레스를 뒤로 미룰뿐인 제도로 보인다. 폭탄을 옆으로 치워 놓은 것처럼 불안감을 안고 지내면서 학습능력만 떨어진것 같다. 지난 해는 판데믹 때문에 원격수업을 하느라 더욱 그랬다.
특별히 하고싶은게 없고 자기가 뭘 잘하는지 모르는 학생이 할 수 있는 노력은 뭘까? 학교공부를 잘해 놓으면 진로는 차차 알아보면 된다는 생각이었다. 그래서 딸아이에게 일단 공부에 집중하라고 말했는데 자기주도적이지 못한 아이는 이걸로 동기부여가 잘 안된다. 공부를 잘해서 결국 뭐가 될지, 어떤 즐거운 인생이 찾아 올지 어렴풋한 그림이라도 그려져야 공부에 흥미를 느낄 것이다.
내가 직업을 선택하던 시절에는 특별한 능력이 없어도 대학 졸업후 고만고만한 회사에 취직해서 숙련도가 높지 않은 사무관리일을 할 수 있었다. 이제 그런 일자리 찾기가 어려워졌다. 전문직이 될 예정인 사람을 제외한 많은 학생들이 졸업후 공무원 시험을 보는 것이 당연하게 되었다. 내가 알던 직업들은 사라졌거나 사라질 것이고 미래유망직업은 쉽게 접근하기 힘들다. 세계적인 석학들이 쓴 책을 읽어봐도 미래의 새로운 직업을 위해 무얼 준비해야할지 막연하다. 아니, 막연하지는 않다. 어떤 직업을 목표로 하든 결국 공부잘하는 것이 기본이라는 결론에 도달하기 때문에 답답한 것이다. 딸아이에게 넓은 직업의 세계를 안내해야 하는데 나의 식견이 짧고 경험이 없는게 미안할 따름이다.
딸아이는 현재 제 아버지의 일하는 모습을 보면서 막연하게 개발자가 되겠다고 한다. 그런데 본인도 개발자가 될 것 같진 않은지 여전히 나에게 묻곤한다. 엄마, 난 뭘 하게 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