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인 - 황석영
소설 같은 제목의 이 책은 황석영 작가의 자서전이다. 저자의 인생이 ‘갇힌 상황’을 벗어나려는 몸부림이었다는 뜻일 테다.
다음은 ‘수인’ 출간기자간담회의 일부이다.
쉰여덟 출소 당시 그의 통잔 잔고는 760만원. 이후 그는 글쓰기로 살아남았다. 그는 자기 삶을 ‘문학적’이라고 표현했다. “내가 감히 잘난 척을 하자면 내 인생과 작품은 합체돼 있다. 엇비슷하다. 그런 면에서 문학은 나의 집이었다. 먼 길 떠나갔다가도 다시 돌아오는 집. 언제라도 나는 문학이란 집을 잊은 적이 없다. 늘 불빛처럼 끌고 왔다.”
그는 인생의 결정적 순간을 묻는 질문에도 문학이라고 답했다. “베트남 참전 때인 거 같다. 전투에 직면했을 때 하나님께 기도했다. ‘저를 살려주십시오. 여기서 죽지 않으면 좋은 글을 쓰겠습니다’라고.” 황석영은 그 기도대로 ‘무기의 그늘’ ‘오래된 정원’ ‘손님’ ‘개밥바라기별’ 등과 같은 주옥같은 작품을 썼다.
[출처] - 국민일보
책의 말미에 작가연보를 보고 매우 놀랐다. 우리 현대사의 파란만장한 현장을 한복판에서 겪으면서도 많은 작품을 썼기 때문이다. 그의 인생과 작품은 일치되었던 것이다. 저자는 책속에서 작가는 ‘선비’이기보다는 ‘시정배’가 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자신을 ‘재간꾼’이라고 칭한 것을 보아도 작가라는 정체성에 대한 분명한 생각이 보인다. 사람들의 삶 속에서 존재하겠다는 생각 말이다.
그가 방북하여 김일성을 만난 것도 정치적인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해서는 아닌 듯하다. 사람이 그어 놓은 선위로 자유롭게 날아다니는 새처럼 ‘못갈 것도 없다‘는 예술인의 자유분방함에 가깝다고 본다. 황석영 작가는 이명박과 함께 중아아시아를 순방하고 이명박을 ’중도실용‘이라고 칭해서 변절했다는 비난을 받았었다. 나는 이것도 변절로는 보지 않는다. 정치가는 아니지만 작가로서 자신의 상징성을 충분히 고려하지 못한 실수 정도로 생각한다.
'수인' 에필로그에 보면 이런 말이 나온다.
"나는 젊은 나이에 일찍 이름을 얻어 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받았고, 항상 누군가 곁에서 챙겨주거나 아껴주는 이들이 있었다. 재간둥이란 참으로 싸가지 없는 존재여서 그것을 믿고 이기적인 자신을 잘 알아채지 못할 때가 많다"
책속에서 작가는 어머니와 아내, 자식들에게 미안한 감정을 많이 드러냈다. 최고의 작가지만 아들, 남편, 아버지로써 그는 부족한 사람이었다. 나는 가족에 헌신하지 못하는 아버지에 대한 저항감이 있다. 그래서 책을 읽으면서 안타까웠다. 그러나 위대한 예술가 중에 헌신적인 아비가 있었나 생각하면서 작가의 훌륭한 작품들에 감사한다. 여전히 황석영 작가는 나의 최애 작가 중 하나다. 그리고 이 책은 자서전이지만 그의 소설들만큼이나 재미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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