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일기

그림일기 - 길 잃은 어린이 지구대에 신고

기록마녀 2022. 9. 28. 22: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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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 잃은 어린이 지구대에 신고한 이야기

오늘 좀 놀라운 일이 있었다. 글쓰기 수업을 마치고 버스정류장으로 걸어가던중 5~6세 정도로 보이는 여자아이가 혼자 길에서 서성이는 것을 발견했다. 그곳은 대형 농산물유통센터가 있는곳으로 주변에는 상가에서 분주히 일하는 사람들만 간간히 보이는 곳이다. 아이는 불안한듯 두리번 거리며 서있었고 주변에 어른은 전혀 없었다. 무언가 심상치 않아서 물었다.

"왜 혼자 있니?"

"집에 혼자 있는데 너무 무서워서 나왔어요. 무서워서 언니가 일하는 육개장 집에 가려고요'

그 말을 듣고 지구대에 신고해야겠다 생각했는데 아이는 주문처럼 말했다.

"우리 언니는 하ΟΟ이고 전화번호는 010 ××××-××××에요."

아이의 말을 듣고 '언니가 보호자인가?' 생각하며 아이의 언니에게 전화를 걸었다. 언니는 상황설명을 듣더니 이렇게 말했다.

"아, 오늘 알바 안 갔는데."

"이 어린이를 어떻게 할까요?" (어디 근처에 데려다 줘야하나 고민)

"잠깐 전화끊고 제가 문자 드릴게요"

하더니 다음과 같은 문자가 왔다.

 

이런! 난감했다. 내게도 낯선 동네였고 지도를 찾아보니 유치원은 너무 멀었다. 대학생이라는 언니의 반응이 어이가 없었는데, 그 학생도 그냥 애구나 생각하며 근처 지구대에 전화했다. 지구대에서는 아이 이름과 나이, 유치원 이름을 묻고는, 유치원에 연락해서 데리러올 수 있도록 조치하겠다고 했다. 어린이는 7살이었는데 또래보다 작아보였다.

지구대에서는 내가 어찌 해야하는지 안내가 없었다. 지구대가 차로 달려와야 하는 일 중에는 길잃은 어린이가 1순위 아닌가 싶어서 이해가 안갔지만, 어차피 어린이가 무사히 인계되어야 마음이 편하겠기에 기다리기로 했다.

"그럼 유치원차 올 때까지 제가 아이를 데리고 있을게요."

기다리면서 아이에게 물어보았다.

"집에 왜 혼자 있었니? 다른 어른은 없었니?"

"언니가 있을 때는 언니가 유치원에 데려다 줬구요. 엄마가 있을 때는 엄마가 데려다 줬고, 아빠가 있을 때는 아빠가 데려다 줬어요. 오늘은 집에 아무도 없어서 무서워서 언니 일하는 곳에 가려고 나왔어요."

"ΟΟ야, 다음부턴 집에서 나와서 막 돌아다니면 안돼. 위험해. 그리고 꼭 어른한테 도와달라고 해야돼."

마음이 아팠다. 아이가 말하는 상황이 잘 이해되지 않았는데 추측해보면 7살아이가 아침에 일어나 집에 아무도 없어서 언니를 찾으러 무작정 나왔다가 길을 잃은 거였다.

한참이 지나도 유치원차가 안보이기에 지구대에 다시 전화했다. 지구대에서는 유치원에 나의 전화번호를 주었으니 조금만 더 기다리라면서 유치원 전화번호를 알려줬다. 유치원에 전화하니, 내가 최초 신고할 때 말한 중학교 근처로 유치원차가 온다기에 더 구체적인 위치를 알려주었다.

결국 유치원차가 와서 아이를 선생님에게 인계하고, 혹시 모를 문제를 대비하기 위해 인증샷을 찍었다.(세상엔 이상한 사람들이 간혹 있어서 일말의 시비거리도 남기지 않으려고)

나는 아이에게 '잠시지만 반가웠어.' 인사하고 내 갈길을 갔다. 잠시후 유치원 원장한테서 전화가 왔다. 정말 큰일날 뻔했다며 감사하다고. 아이의 집 사정을 자세히 얘기해주며, 그 아이 부모님에게 다시는 이런 일이 벌어지지 않도록 잘 말씀드린다면서 유치원에 한번 놀러오라고 했다. (뭘 이런 일로!) 아이를 잃어버리게 됐다면 혹시 책임질 일이라도 생길까봐 진심으로 고마워하는 원장의 목소리였다.

7살짜리 동생이 길을 헤메고 있다고 전화하면 대학생 언니가 당장 달려올 줄 알았는데 시큰둥한 반응이 황당했다. 언니란 학생의 변명은 '아침에 동생이 깨워도 안 일어나서 그냥뒀다' 였다. 세상에...... 엄마 아빠가 있고 성인인 언니가 있는 집 아이인데도 이렇게 방치될 수도 있는 거다.

마음이 좋지 않은 에피소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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