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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벽한 아내 만들기 - 웬디 무어책 2020. 8. 5. 22:07반응형
완벽한 아내 만들기 - 웬디 무어
'원하는 아내를 찾지 못하겠다면
만들어내면 되는 것 아닌가!'
18세기 영국의 시인이자 반노예제 운동가, 아동도서작가, 급진주의적 사상가인 토마스 데이는
결혼하고 싶은 여성상이 명확했다. 순진한 시골처녀일 것. 때로는 스파르타의 여인처럼 강인할 것,
세상과 거리를 둔 채 자신과 오두막에서 검소하게 살 것, 변덕에 무조건 고분고분하게 맞출 것.
조건에 딱 맞는 여성을 찾기란 어려웠고, 찾는다 해도 퇴짜 맞기 일쑤였다.
데이는 자신이 바라는 완벽한 짝을 찾을 수 없음을 깨닫고 마침내 그런 여성을 만들어내기로 결심한다. 고아 소녀 두 명을 입양하고 루소의 에밀을 지침서 삼아 모범적인 아내를 만드는 실험에 돌입한다.
놀라운 것은 토마스 데이가 이런 실험을 할 것을 알고 있던 그의 친구들이
이 계획을 말리거나 비인간적이라 비난하지 않고 묵인했다는 점이다.
18세기는 그런 시대였던 것이다.
조금 더 충격적인 것은 토마스 데이가 위선적이긴 하나
미치광이 싸이코패스가 아니라 그럭저럭 괜찮은 사람이었다는 것이다.
책속에서 그를 설명하는 문장을 보자.
돈을 주지 않고는 거지의 앞을 지나칠 수 없었던 자선가가,
말을 학대하는 것은 말할 것도 없고
거미조차 죽일 권리가 없다고 느꼈던 자연을 사랑하는 이가,
한 사람이 다른 사람에게 완벽하게 종속되는 것이기 때문에
노예제를 반대했던 박애주의자가
한 여자를 자신의 명령에 굴복시키고
욕구에 맞게 변모시킬 권리가 자신에게 있다고 확신했다.
'피그말리온'에 등장하는 엘리자는 변신 이후 비참해 하며
히긴스 교수에게 이렇게 말했다.
“좋은 옷을 입고 있음에도 여전히 노예다."
토마스 데이의 피실험자가 되었던 고아소녀 사브리나는
나중에 데이의 명령에 사소한 불복종을 했다가
꼬투리가 잡혀 데이와 결혼하지 못한다.
데이의 친구 빅널과 결혼하게 되는데 이 결혼도 순탄치 않다.
빅널은 놀음과 방탕한 생활로 재산을 탕진하고
두 아들과 사브리나에게 재산 한 푼 남기지 않고 일찍 죽는다.
18세기 사회에서 남편은 죽고 재산이 전혀 없이
아이만 둘이라는 것은 정말 너무 큰 불행인 것이다.
내가 살고 있는 21세기도 크게 다르지 않다는 점이 씁쓸하다.
사려 깊은 성격에 부지런한 사브리나는 지인의 학교에서 일하며
두 아들을 잘 키우고 평생을 성실하게 일해서
자식들에게 유산도 남기게 된다.
책 내용 중 아이러니한 점은 토마스 데이에게 청혼 받았던 사브리나가
반항을 하여 데이의 속박에서 벗어났던 반면에
유복한 집에서 자라고 넉넉한 유산까지 상속받았던 에스터가
거의 토마스 데이에게 매달리듯 결혼 한 대목이었다.
참 답답했지만 18세기에 독신여성으로 산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감히 내가 단정할 순 없을 것이다.
18세기를 소설 속에서 완벽히 재현한 제인 오스틴의
저 유명한 소설 ‘오만과 편견’을 보면서
막연히 그들의 사정을 추측해 볼뿐이다.
한번 남편을 선택하면 죽을 때까지 삶의 모습이 결정되는 것이므로
여성들은 남자를 선택하면서 변덕스러웠을 것이고 (마음이 갈팡질팡했을 것이다)
토마스 데이 같은 남자는 거듭되는 파혼에 절망해서
이런 기괴한 생각까지 품었을지도 모르겠다.
논픽션이지만 소설같이 흥미진진하게 잘 읽히는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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