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풀잎은 노래한다 - 도리스 레싱책 2020. 8. 16. 01:00반응형
풀잎은 노래한다 - 도리스 레싱
'다섯째 아이'에 이어 두 번째로 읽은 레싱의 소설. 싱그러운 제목과 전혀 어울리지 않는 소설이다. 이 제목은 워즈워드의 시 ‘황무지’ 에 나온 구절이라고 한다.
메리는 남아프리카의 가난한 시골마을 출신이다. 도시로 나와 직장을 다니며 평범하지만 행복하게 지낸다. 술주정꾼 아버지와 가난에 찌든 엄마를 보고 자라 결혼을 생각하지 않았다. 그러나 어느 파티에서 친구들이 수군대는 것을 듣게 된다. ‘어딘가 나사가 하나 빠졌든지, 문제가 있는 것이 분명하다’는 험담을. 결국 메리는 결혼에 집착하게 되고 땅에 애정을 갖고 있는 우직한 농부 리처드와 결혼한다.
외딴 농장의 작은 집에서 메리는 가난하게 살아간다. 자신이 그렇게 도망치고 싶었던 부모님의 삶을 재현하고 있는 것 처럼 느껴진다. 리처드는 성실하지만 능력이 없고 운도 없어 실패만 반복한다. 무료한 일상에서 그녀의 에너지는 흑인 하인을 닦달하는데 쓰인다. 숨 막히게 더운 날씨와 원주민들을 증오하게 되고 남편도 증오하게 된다. 도시로 한번 도망쳤지만 나이 먹은 유부녀를 받아줄 곳은 없다. 체념한 채로 살아가다가 남편의 농장에서 반항적인 한 원주민에게 채찍질을 하게 된다. 모세란 이름의 그 원주민은 나중에 메리의 집안일을 도와줄 하인이 된다.
메리는 하인을 밥 먹듯이 해고했었는데 그 일로 남편의 타박을 받는다. 그만두겠다는 모세를 울면서 붙잡기까지 한다. 원주민을 짐승 취급하던 메리에겐 큰 굴욕이었다. 이 사건 이후로 모세는 하인답지 않은 태도를 보이며 메리는 점점 그를 두려워한다. 나중에 농장관리인으로 온 영국인 청년 토니는 둘의 모습을 보며 경악한다. 메리는 감정적으로 모세에게 완전히 제압당했지만 젊은 청년 토니에 의지해 그에게서 벗어나려 한다. 젊은 백인 남자를 앞세워 자신을 쫒아내는 메리를 보고 분노한 모세는 메리를 죽이고 만다.
이 여인의 잘못은 무엇인가? 중대한 인생의 선택을 그깟 주변인의 시선 때문에 성급하게 결정해 버린 것. 하지만 그 시대에 이런 여성이 꽤 있었으리라 짐작된다. 더위와 희망 없는 결혼생활 속에서 메리는 반쯤 미쳐버린다. 이해한다. 짐승 취급하던 하인에게 의지하는 자신의 모습에 환멸도 느끼지만 건장한 검은 몸뚱이에 묘한 매력도 느낀다. 이해한다.
이 소설에서 가장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이 모세가 메리를 죽인 것. 죽이고 도망가지 않고 나무에 기대에 서있던 것. 모세는 메리를 질투심에 죽였나? 서로 사랑하다 변심한 것도 아니고... ‘너는 나에게 굴욕감을 줬어’ 이건가? 원주민들은 죄를 지었을 때 도망가기 보다는 죄를 인정하고 선처를 호소하는 경우가 많다고 소설의 앞부분에 나왔었다. 그래도 여전히 모세가 왜 살인까지 한 것인지 이해하기 힘들다.
이해와는 별개로 내용에 훅 빨려들어 읽었다. 어찌나 몰입이 되던지 날씨를 묘사하는 부분에서는 덩달아 짜증이 났다. 거대한 땅을 개인이 소유하고 타인의 노동력을 착취하는 곳에는 늘 재앙이 있었다. 식민지시대에 지배/피지배계급 모두가 붕괴하는 모습을 생생하게 보여주는 소설이다.같은 작가의 다른 책
https://1904story.tistory.com/12?category=9201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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