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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의 이유 - 김영하책 2020. 8. 12. 09:54반응형
한동안 장편소설을 푹 빠져서 읽느라고 눈이 고생했다. 이번엔 좀 가벼운 마음으로 읽을 수 있는 책을 골랐다. 김영하의 산문집 '여행의 이유'를 선택한 건 코로나19 때문인 지도 모른다. 당분간 여행떠나기가 쉽지 않으니 말이다.
"어둠이 빛의 부재라면 여행은 일상의 부재다"
우리는 여행을 왜 하나?
그냥. 좋으니까!
'좋다'는 말 속에 무엇이 담겼나 생각하게 하는 책이다. 술술 잘 읽히고 재미있다. 김영하작가를 좋아하는 독자라면 미소를 지으면서 읽을 에피소드도 여럿 나온다.
'그래서 여행의 이유가 뭐래?'하고 물을 사람을 위해서 김영하작가가 풀어 놓은 이유 몇 가지를 정리해 본다.
일상으로부터의 탈출
-상처를 몽땅 흡수한 물건들로부터 달아나기
오래 살아온 집에는 상처가 있다. 지워지지 않는 벽지의 얼룩처럼 온갖 기억들이 집 여기저기에 들러붙어 있다. 가족에게 받은 고통, 내가 그들에게 주었거나 그들로부터 들은 뼈아픈 말들은 사라지지 않고 집 구석구석에 묻어 있다.
DNA에 각인 되어 있는 충동
인류는 걸었다. 끝도 없이 걷거나 뛰었고, 그게 다른 포유류와 다른 인류의 강점이었다. 어떤 인류는 아주 멀리까지 이동했다.아프리카에서 출발해 그린란드나 북극권까지 갔고, 몽골에서 출발한 어떤 그룹은 얼어붙은 베링해협을 건너 아메리카 대륙으로 넘어가 마야와 잉카, 아즈텍 문명을 일구었다.
깨달음을 얻기 위해
그러나 우리의 내면에는 우리가 미처 깨닫지 못하는 강력한 바람이 있다. 여행을 통해 '뜻밖의 사실'을 알게 되고, 자신과 세계에 대한 놀라운 깨달음을 얻게 되는 것, 바로 그것이다. 그러나 이런 바람은 그야말로 '뜻밖'이어야 가능한 것이기 때문에 애초에 그걸 원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뒤통수를 얻어맞는 것 같은 각성은 대체로 예상치 못한 순간에 찾아온다.
파리의 세느강을 보았을 땐 그 크기에 실망했다.
'뭐야? 한강하고 비교하니 이건...... 시냇물인가'
콜로세움은 멀리서부터 오줌지린내가 풍겨와서 옛 건축물의 아름다움을 느끼기 힘들었다.
이런 실망에 더해 뜻밖의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내가 여행을 많이 좋아하는 사람인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 나는 새로운 곳을 탐험하기 보다는, 익숙한 곳에서 정해진 일과를 반복하는 것을 선호하는 부류였다. 그 사실을 그렇게 멀리까지 가서 알게 될 줄이야.
아폴로 8호의 승무원들은 달의 궤도에 진입한 뒤, 달 표면에서 떠오르는 지구의 모습을 사진에 담아 전송했다.
달의 표면으로 떠오르는 지구의 모습이 그토록 아름답게 보였던 것과 그 푸른 구슬에서 시인이 바로 인류애를 떠올린 것은 지구라는 행성의 승객인 우리 모두가 오랜 세월 서로에게 보여준 신뢰와 환대 덕분이었을 것이다.
인생은 여행과 같다고 한다. 그렇다면 미리 계획한 대로 되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긴장을 풀고 나자신과 세계에 대한 뜻밖의 깨달음을 기다리며 느긋하게 가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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